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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 1810


블루 플루티드 자기는 코펜하겐의 부르주아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렸습니다. 덴마크의 절대주의 통치에도 불구하고, 블루 플루티드 자기는 1800년대 이후로 계속해서 그 시대를 특징짓는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르주아들은 모두가 자유로운 국가를 세우고자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의 바람은 개인의 이득보다는 공익을 위한다는 특별한 시민 의식을 통해 성취됩니다. 프랑스 혁명을 통해 그 누구도 권력과 타인의 이기주의에 억압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의 탄생지였던 고대 그리스의 미학과 가치는 사람들을 매료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학과 가치는 그 당시 양식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많은 사람이 1795년 코펜하겐 화재와 1807년 영국 폭격 이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주택에서 거주했습니다.


전쟁, 그리고 블루 플루티드


나폴레옹 전쟁은 블루 플루티드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자기 원료는 노르웨이와 보른홀름 섬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코펜하겐으로 수송되었습니다. 특히 프랑스의 고령토로는 더욱 흰 자기를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 중에 덴마크는 교역 선박을 통해 전쟁 중인 국가로 생필품을 실어나르며 큰 수익을 벌고자 중립을 지켰습니다. 영국이 나폴레옹에 대한 충성심으로 덴마크를 방해했고, 더는 프랑스의 고령토를 실어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1801년, 영국은 덴마크의 교역 선박을 압수하고 함대를 공격했으며, 1807년, 덴마크를 점령하고 폭격을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기 공장도 폭격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덴마크는 1813년 파산을 선언했고, 1814년 전후 합의 과정에서 노르웨이를 잃게 되었습니다. 1812년, 공장에 비축해두었던 프랑스 고령토가 다 떨어지고 나자 블루 플루티드는 회색빛을 띠게 되었습니다. 1815년, 보른홀름 섬으로부터 고령토를 다시 가져올 수 있게 되면서 자기는 다시 흰빛을 띠게 됩니다. 

1807년 영국 폭격으로 피해를 본 공장. C.W. 에케르스베르크(C.W.Eckersberg): 처참하게 폭격당한 코펜하겐(The Terrible Bombardment of Copenhagen). 1807. 덴마크 왕실 도서관.

고전주의


고대 세계의 표현 양식은 179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폼페이에서의 발굴 작업과 파에스툼의 그리스 신전에서 영감을 받은 이 표현 양식은 문명의 요람이었던 그리스 문화를 향한 당시의 사고방식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고전주의 양식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예술, 건축 및 실내 디자인의 요소를 다시 활용했습니다. 그 당시 뛰어난 예술가들은 모두 로마로 여행을 떠나 유적과 부유한 예술품 감정가들이 소장한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블루 플루티드 또한 고전주의 양식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1790년부터 블루 플루티드는 고대 신전에서 볼 수 있는 직선과 덴틸 장식(가장자리에 치아 모양의 작은 사각형을 두른 장식)과 같은 "앤틱" 양식으로 페인팅 되었습니다. 현재의 골 모양은 고대 신전 기둥에서 볼 수 있는 홈을 닮았습니다.

1790년대에 생산된 "앤틱" 테린.

거울로 장식된 테이블


서비스 알 라 프랑세즈(service à la française)를 위해 세팅된 테이블은 아래 사진과 같습니다. 이번에는 테이블 중앙의 장식물로 거울이 달린 플래토가 놓여 있습니다. 테이블에 놓인 신전, 조형물, 오벨리스크, 꽃병, 꽃이나 디저트가 담긴 값비싼 쇼피스는 모두 고전주의 양식의 장식입니다. 테이블 장식에도 뛰어난 장인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자기나 청동 장식이 아닌 경우, 제과업자에 의해 설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꽃은 실크, 깃털, 설탕 또는 자기로 만들어진 조화입니다. 식기 세팅은 심플하지만, 유리잔이 테이블 위에 더해집니다. 거울이 달린 중앙 장식물은 비싼 가격 때문에 뛰어난 코펜하겐의 제과업자에게서 빌려오기도 했습니다. 부유한 가정에서는 중앙에 다이닝 테이블을 놓은 다이닝 룸을 따로 마련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격식이 필요 없는 일상적인 식사는 소파 옆 테이블에서 했습니다. 블루 플루티드 식기들은 다이닝 룸의 사이드보드나 식기 선반에 보관되었습니다. 사이드보드와 식기 선반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마호가니로 제작되었습니다.

크리스티앙 8세의 청동 식기로 차려진 연회. 로센보르 성, 2006.

시그니처에 숨겨진 페인터


블루 플루티드는 계속해서 인기를 얻었습니다. 극히 일부 사람들만이 수백 개의 식기로 이루어진 세트를 구매했지만, 1820년 로얄 코펜하겐은 블루 플루티드보다 5배나 더 값비싼 블루 플라워를 생산했습니다. 1820년대를 거치며 블루 플루티드 패턴은 점점 더 옅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블루 플루티드 페인터들이 급여가 오르지 않은 채 더욱더 많은 일을 해내야 하는 압박에 시달렸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당시 블루 플루티드 페인터들은 식기 하나당 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페인터들은 급여를 정산받기 위해 자신이 장식한 식기 뒷면에 푸른색으로 아주 작은 페인터만의 시그니처를 새겼습니다. 공장 설립 당시부터 고용된 페인터들의 이름은 모두 알려졌지만, 소수의 이름만이 시그니처와 관계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블루 페인터의 개인 시그니처는 세 줄의 물결무늬 위로 보이는 작은 십자가입니다. 이 마크는 1780년부터 1837년까지 일하며 많은 블루 플루티드를 생산해냈던 블루 페인터 F.G 슐츠(F.G.Schaltz)의 마크입니다.
  • 덴마크의 어머니

    1775

    비길리우스 에릭센: 다우저 여왕 줄리안 마리. 1776. S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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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르주아

    1810

    C.W. 에커버그: 벨라와 한나. 1820. S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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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적인 로얄 코펜하겐으로 거듭나다!

    1889

    P.S. Kr:yer: Hirschsprung 가족 사진. 1881년. 허쉬스프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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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격변의 1920년대

    1925

    올라프 러드: 라이더. 1918. 푸글레상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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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관주의의 우아함

    1963

    Sigurd Valdemar Lønoldt: 빨간머리 여자. 기한이 지났다. 개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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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 밀레니엄

    2015

    Cathrine Raben Davidsen: 포함. 기한이 지났다. 개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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